9월 26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주 3회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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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때는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투자 경험과 좁은 시야에 갖혀 본질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해 수많은 투자 자산이 있다. 이들 중 특별할 만큼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 것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남들보다 앞선 뛰어난 기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까. 아니면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비밀 레시피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즘 세상은 뛰어난 기능에 그다지 큰 프리미엄을 부여해주지 않는다. 프리미엄이 붙게되는 요소는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스토리, 명확한 비전,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헤리티지다.
삼성은 줄곧 스펙상 갤럭시 스마트폰이 아이폰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애플이 고급형인 '아이폰14 프로' 모델에 4800만 화소 카메라를 최초로 탑재한 것을 꼬집어 "4800만 화소? 거의 다 왔구나 애플!"이라며 "우리는 2년 6개월 4일 전부터 1억800만 화소 카메라를 쓰고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또 아이폰이 4K 동영상 촬영까지 지원하는 점을 빗대 "파티에 잘 왔어, 애플(Welcome to the party, Apple)"이라며 "우린 이미 2년 6개월 전부터 8K로 찍고 있다"라고 적힌 야외 광고판을 내걸기도 했다.
기능적인 우위만 놓고보면 삼성의 스마트폰을 안 쓸 이유가 전혀 없어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2분기 400달러(약 55만원) 이상의 고가폰 시장에서 애플은 점유율 5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19%로 2위에 올랐다. 판매 전망치의 경우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폴더블폰의 연간 판매량 목표치는 1500만대인 반면 아이폰 14 시리즈는 초도물량만 9000만대에 달한다.
양사의 신형 스마트폰이 곧 출시된다는 뉴스가 나왔을때 주변 반응만 살펴봐도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아이폰 14 디자인과 출시일이 처음 공개됐을 때 필자의 회사 동료들은 ‘슬랙 (업무용 메신저)’에 관련 뉴스 링크를 공유했고 점심 시간에는 이번 14 시리즈에서 바뀐 디자인과 기능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반면 신형 갤럭시 Z 플립4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언급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지난 수 년간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신형 아이폰 판매가 시작되는 첫날 애플 매장 앞에는 기다란 대기줄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신형 스마트폰을 사기위해 매장 앞에 대기줄이 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뒤인 2021년 4월, 코나 일렉트릭이 국내에서 단종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잇따른 화재 사고와 아이오닉 5 출시로 인한 수요 감소가 이유였다. 반면 2020년 출시된 테슬라의 모델 Y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2022년 2분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순위에서 테슬라 모델 Y는 6.53%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수많은 저가형 전기차 모델들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에도 가격이 1억원을 웃도는 테슬라 모델 Y가 가장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2018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 내걸었던 당찬 옥외광고가 무색할 만큼 현대차는 점점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하는 모습이다. 신형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 5’는 올해 글로벌 누적 판매량 6만여대, 기아 전기차 ‘EV6’는 4만여대를 기록 중인 반면, 테슬라는 모델 Y 차종 한 개 만으로 같은 기간 34만대가 팔렸다. 게다가 테슬라는 전 세계에 엄청난 팬덤을 보유 중이다. 테슬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인 ‘테슬람 (테슬라 + 이슬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테슬라의 실적 발표, 신차 발표회, 심지어 CEO인 일론 머스크의 돌발 행동까지 이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뉴스거리다. 테슬라의 2022년 1분기 매출은 약 23조원으로 현대차 1분기 매출인 30조원에도 못미치지만, 시가총액은 무려 1100조원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시가총액을 합친 73조원 보다도 거의 15배나 크다.
포르쉐의 키 박스가 운전대 왼쪽에 있는 이유는 포르쉐가 원래 192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참가했던 레이싱카 출신이기 때문이다. 당시 르망 레이스에 참가한 레이싱카들의 출발 방법은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독특했다. 우선 레이싱카들을 피트 옆에 줄지어 세워놓고, 드라이버들은 트랙 맞은편에 서서 대기하게 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드라이버가 자신의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따라서 남들보다 빨리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는 순발력이 필수였다. 미세한 시간 차이가 초반 순위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1951년 처음 르망에 참가한 포르쉐는 ‘어떻게 하면 출발 시간을 더 단축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바로 ‘왼쪽 시동 키’였다. 모든 제조사가 오른쪽 시동 키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때 떠올린 발상의 전환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운전석에 탄 드라이버는 왼손으로 시동을 걸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어를 바꾸며 순식간에 튀어나갈 수 있었다.
이 감성이 오늘날 포르쉐 양산차에도 그대로 녹아든 결과가 바로 운전대 왼쪽에 위치한 키 박스이다. 남들보다 0.1초라도 빨리 출발하기 위한 집념을 운전대 왼편에 새겨 넣은 셈이다. 포르쉐 차량을 닮은 키를 꽂거나, 키 모양 더미를 돌려 매 순간마다 레이싱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 포르쉐만의 헤리티지(Heritage, 유산)를 만들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포르쉐 자동차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렇듯 수십년을 이어온 포르쉐만의 유산이 곳곳에 잘 묻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테슬라의 미션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세계적 전환을 가속화한다’이다. 이 미션만 읽어봐도 테슬라가 앞으로 단순히 전기차만 만들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에 공감하는 전 세계 사람들은 테슬라가 내세우는 이 간단한 미션에 공감하고 있다. 때문에 고장이 잦고 승차감이 불편하더라도 테슬라 자동차를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일론 머스크라는 천재 CEO가 주는 기대감도 큰 몫을 차지한다. 반면 현대차는 ‘휴머니티를 위한 진보’라는 다소 모호한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왜’ 현대차가 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기업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자, 이제 다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비교로 돌아와 보자. 비트코인의 비전은 14년전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고 명확하다. 바로 ‘정부나 중앙기관의 개입없이 오로지 개인대 개인간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현금’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오직 이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극도로 보수적인 정책을 유지한다. 네트워크의 탈중앙성과 검열 저항성을 해치는 방향이라면 어떤 업그레이드도 커뮤니티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또한 비트코인은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엄청난 부를 거머쥘 기회를 마다한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는 아주 독특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바로 비트코인의 헤리티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포르쉐가 지금까지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키 박스를 운전대 왼쪽에 놓는 헤리티지를 유지하듯이, 비트코인도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강력한 탈중앙화를 지키는 헤리티지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세상은 공감할만한 아름다운 스토리와 명확한 비전,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헤리티지를 지닌 것을 단순히 기능이 뛰어난 것보다 더 선호한다.
이더리움은 머지(The Merge)를 통해 성공적으로 Proof-of-stake(지분증명) 블록체인으로 전환하여 뛰어난 ‘기능성’을 다시 한번 증명했으나 여전히 비트코인 시가총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능 만으로는 프리미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이더리움은 무엇이 되겠다는 비전도 불분명하다. 탈중앙화된 디지털 현금이 되려는 것일까, 아니면 구글같은 플랫폼 기업이 되려는 것일까. 지나가는 사람 10명을 붙잡고 이더리움을 정의해보라고 하면 아마 모두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을 추월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높지 않아보인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운명은 앞으로도 아름다움과 기능 중 어떤 길을 선택하냐에 따라 더욱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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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자 "웹3.0 사용설명서"의 저자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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